'어린이'를 명시한 음란 표현, 성인 부스라도 자제와 지적 필요해

성인용 창작물에 아동 캐릭터 표현이 과연 한국만의 검열 문제일까.

지난 주말,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한 서브컬처 동인 행사에서 소동이 발생했다. 성인만 입장 가능한 '어른의 특별존'에 어린이로 표기된 캐릭터의 음란 작품들이 전시됐다는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한 것. 신고 근거는 작가가 홍보용으로 자기 SNS에 직접 올린 사진과 참가자들의 후기 사진이었다.

가장 논란이 크게 번진 것은 한 판넬이다. '어린이 런치 세트'라고 적힌 문구 뒤에 기사로 표현이 불가능한 수위의 말들이 이어졌고, 그 아래의 그림 노출 수위도 적나라했다. 이와 연계되어 그밖에 어린 캐릭터들의 그림도 함께 알려지면서 파장은 커졌다.

행사 중지나 압수 등의 조치는 없었지만, 주최 측은 논란의 작품을 현장에서 내리도록 했다. 이어 SNS 성명문을 통해 "법적 검토를 거친 가이드라인을 명시했으나 급속도로 커진 규모에 비해 관리 인력과 시스템을 충분히 갖추지 못했다"고 사과하며 "충분한 준비를 갖추기 전까지는 어른의 특별존을 운영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으로 "신분증 없이 드나들거나 외부에서 성인 구역을 쉽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고, 아동청소년법(아청법)을 위반했다는 주장 또한 거짓"이라며 법리적 검토를 충분히 거쳤음을 알렸다. 

실제로 방대한 창작물을 운영진이 모두 사전 점검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무리가 있다. 해외 역시 가이드 기준을 세우고, 위반 신고 시 스태프가 조치하는 식으로 성인 동인 행사를 운영한다. 결국 문제는 일부 참가자의 안일함과 지나친 표현, 그것을 조기에 자정하지 못한 분위기였다.

지난해 연말 취재했던 일본 코믹마켓 C103 현장 
지난해 연말 취재했던 일본 코믹마켓 C103 현장 

■ 해외 가상 캐릭터 창작은 모두 자유로운가? '어린이'는 다르다

분명 한국은 성적 검열이 심한 국가다. 이것을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성인에게도 성인물 접근 제한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편이며, 최근 뚜렷한 법적 근거 없이 개최가 막힌 성인 페스티벌 사건도 있었다. 단지 성인 구역을 운영했다는 사실만으로 부스가 통제당하고 추후 행사에 지장이 생겼다면 이번 글 주제는 창작의 자유를 지켜야 한다는 역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해외 역시, 어린이와 소아성애 소재는 가상 캐릭터라도 취급 차원이 다르다.

세계 최대 규모의 동인 행사인 일본 코믹마켓(코미케)조차도 오프라인 성인물 기준에 대해 수십 년 동안 논쟁과 사건을 겪어왔다. 신분증이나 여권을 제시해야 구매 가능한 성인 동인지마저도 어린이 표현에 대한 운영진의 제재는 분명했고, 가이드라인 제시도 점차 구체적으로 명문화되고 있다.  

몰래 알음알음 파는 경우는 있다. 하지만 걸리면 고쳐야 한다. 현장에서 운영진 의견에 따라 긴급하게 내용물에 추가 검열 작업을 하는 부스도 종종 있고, 규정을 무시하고 강행할 경우 블랙리스트에 오르기도 한다. 법적으로 괜찮을 여지가 있더라도, 아주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를 위한 자율규제에 의해서다.

코미케 중심의 동인 서브컬처는 오래 발전했고 규모 역시 놀랄 만큼 방대하다. 하지만 19금 동인 창작이 어디까지나 '음지'라는 사실은 잊지 않는다. 그만큼 선을 넘을 때 내부에서 자정하려는 노력도 강하다. 국내 역시 발전상과 함께 이 주의사항 또한 함께 인지할 필요가 있다.

문제의 핵심이 된 한 부스 참여 작가의 SNS
문제의 핵심이 된 한 부스 참여 작가의 SNS

■ 일부의 믿기 힘든 '트롤링', 자정 분위기가 필요했다

이번 킨텍스 행사 역시 선을 지키기 위한 많은 이들의 노력이 있었다. 어린이날에 열린 행사라는 점은 우연의 일치이며, 해당 판넬에 출연한 것은 설정으로 따지면 아동이 아니라고 넘어갈 여지도 존재하는 캐릭터였다.

그러나 '어린이'라는 단어 적시와 작가 스스로 X(트위터)에 올린 소개로 인해 해명할 통로가 차단됐다. "어린이날에 맞춘 5월의 XXX"라는 말은 어린이날을 겨냥했다는 자기 인증과 동시에 수위 자체로도 충격을 남겼다.

일본 등 해외 성인물 창작지에서 "등장 캐릭터는 모두 성인" 등의 안내문을 어떻게든 붙이곤 한다. 그만큼 이런 아동 성애 표현은 법 이전에 행사 운영에서 윤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미다. 

물론, 이번 성인 부스에 참가한 작가들도 절대 다수가 규정을 철저하게 지켰음을 취재를 통해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외부까지 '사고'를 친 일부가 있었고, 때마침 이어지던 진영 논리에 휘말리면서 곧바로 자정 작용을 하지 못한 결과가 커진 것이다.

문제의 '어린이 런치세트' 작가가 직접 자기 SNS로 홍보했을 때, "이것은 위험하다"는 지적이 이어져야 정상이었다. 오프라인 성인 부스 내용을 온라인에 노출해 규정을 어긴 점, 그리고 그 등신대의 내용 자체. 둘 중 하나만으로도 매우 위험했다. 그런데 두 가지를 동시에 어겼다. 촬영 및 공유 규정은 굉장히 많은 관람객이 어기기도 했다. 

그러나 지적하는 사람은 도리어 공격을 받는 일이 발생했고, 다른 커뮤니티로 퍼지기까지 어떤 자정 움직임도 없었다. 위 작가의 SNS는 행사 한참 전인 4월 18일 게재됐다. 적어도 어린이 표현물만큼은 내려야 한다는 의견이 빠르게 나오고 수용됐다면 지금과 같은 파장은 없었을 것이다. 

전후관계를 조사하면, 행사 초반부터 타 사이트의 신고 테러에 의해 극단적 피아 구분 의식이 생긴 것은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용 가능한 선의 범주는 이성적으로 살펴야 했다. 규정은 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위해 있는 것이다. 

코믹마켓이 열리는 도쿄 빅 사이트 전경
코믹마켓이 열리는 도쿄 빅 사이트 전경

■ '창작 토양'인 동인계, 팽창한 규모만큼 성숙한 분위기 조성되길

적어도 소아성애 소재에 관해서는 한국 검열의 탓을 할 수가 없다. '성진국'이라는 일본 성인 행사였다면 오히려 더 빠르고 예민한 조치를 당했을 가능성이 높다. 성인용 웹에서 오가는 콘텐츠와 성인 전용 부스가 무엇이 다르냐고 해도, 현실 오프라인 현장은 온라인 세계와 의미가 완전히 다르다.

서브컬처 동인 활동은 기본적으로 자유로운 창작을 보장해야 한다. 유능한 아마추어 작가들의 성장 토양이 되기도 한다. 서브컬처에서 빛나는 작품 세계를 완성하고 후대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페이트'나 '동방 프로젝트', '쓰르라미 울 적에' 등 수많은 시리즈가 아마추어 동인에서 출발했다. 특히 '페이트'는 시작이 19금 게임이었다.

한국 역시 2차 창작 규모가 매해 급증하는 한편, 수준 역시 크게 발전하고 있다. 길게 볼 때 긍정적인 징조다. 여기서 활발하게 늘어난 창작자와 소비자는 그만큼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낼 생태계가 된다. 

다만 현실 속에서 교류하며 문화적으로 녹아들기 위해서는 현실 속 마지노선도 함께 생각을 할 필요가 있다. 부디 이번 사건이 창작 표현을 축소시키고 서로를 공격하는 수단이 아니라, 함께 더욱 성숙한 문화를 고민하고 나아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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