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계별 쌓아올림, 주인공 목적의식 실종된 초반 서사 구조
좋은 비주얼과 달리 내면 개성과 서사가 사라진 캐릭터성
청각 무시로 인해 후반까지도 완성되지 못한 내러티브

화제작 '명조: 워더링 웨이브'를 둘러싸고 의견이 분분하다. 평가 속에서 강점과 단점은 뚜렷하다. 단점으로 꼽히는 분야는 최적화, 맵 완성도, 그리고 스토리다. 가장 후한 평가가 "후반부는 그래도 나쁘진 않다" 정도다. 

현재 서브컬처 게임 시장에서 스토리 중요성은 매번 말해도 모자라다. 플레이 동기부여를 이끌고 '작품'으로서 팬덤을 형성하며, IP 전체의 영향력을 키우는 역할을 한다.  한국과 일본 등 주요 개발 업계에서도 게임 시나리오 발전을 위해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

장르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유저들이 말하는 스토리 개념은 기본적인 이야기에 플롯, 연출 등 전체적인 내러티브를 아우른다. 스토리텔링으로 명명하기도 한다. 서사 자체가 평범하더라도 유저 감정을 꿰뚫는 연출로 훌륭한 내러티브를 만들기도 하고, 연출이 단순해도 탄탄한 이야기로 좋은 반응을 유지하는 사례도 많다.

출시 빌드에 나온 조수 임무 1장 6막까지 모두 경험하고 평가할 때, '명조'는 기본 서사 구조와 내러티브 모두 총체적으로 무너진 상태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혹자는 고유명사 등으로 설명이 너무 어려워서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이유 중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 첫 단추부터 잘못됐다

사실, 현재 '명조'는 매우 쉬워진 버전이다. CBT에서 중국어를 거진 한자 그대로 옮겨온 듯했던 수많은 고유명사는 대부분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바뀌었다. 선발대 유저들 사이에서 "4막부터 볼 만하다"는 말이 나온 이유도 그 시점에서 대사가 더욱 쉬워졌기 때문이다. 

근본 문제는, 플롯의 단계적 구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계관이 특이하고 스케일이 큰 작품은 첫 걸음부터 크게 발을 떼지 않는다. 도입부는 화자의 눈 앞에 놓인 상황부터 풀어내는 것이 정석이다. 소비자가 우선 주인공으로서 목적의식을 가지게 한다. 흥미를 붙인 뒤 큰 개념을 하나씩 접목하듯 붙이면서 세계관 전체에 한 걸음씩 접근하게 만드는 정석 구조다.

그나마 나름의 긴장감을 잠시 보여준 '스카'
그나마 나름의 긴장감을 잠시 보여준 '스카'

한국 게임 중 '블루 아카이브'의 시나리오 작법이 좋은 예시다. 이 게임이 세계관의 기본 개념과 설정 용어부터 설명하고 시작했다면 '명조' 이상으로 지루하고 난해한 도입부가 태어났을 것이다. 나중에 돌아볼 때 깨닫지만 색채, 헤일로, 빛의 고리, 싯딤의 상자 등 설명이 어려운 고유명사는 의외로 매우 많았다.

하지만 실제 도입부에서 이런 용어들은 스치고 지나갈 뿐이다. 당장 '빚더미로 위기에 빠진 학교를 구하자'는 지극히 단순한 미션부터 제공한다. 총에 맞아도 죽지 않는 학생 등 수많은 궁금증이 생기지만 일단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도록 만든다. 최우선 사건을 만들고, 바로 전개한다. 가장 큰 개념에 다다를 때까지 구성은 막힘이 없다.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은 잘못 쓸 경우 오히려 이해를 해친다. '명조'는 그 함정에 빠졌다. 가장 먼저 갖춰야 할 조각은 당장 금주성에 다다를 때까지의 사건 구성이었다. 하지만 사건은 없었다. 후반부에 스며들여야 할 개념만 시작부터 눈앞에 있었다.

영윤 대공이 무엇을 원하는지와 금주성 상황이 어떤지 설명이 따라오지만, 주인공과의 접점 없이 주입되는 이야기가 유저 입장에서 와닿을 리가 없다. 국내 최고 일타강사를 초빙해 최대한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더라도 이런 구조에서 흥미를 끌기는 어렵다.

서브컬처 치트키에 속하는 '어셈블'도 너무 허망하게 소비했다
서브컬처 치트키에 속하는 '어셈블'도 너무 허망하게 소비했다

■ 멋있고 예쁘긴 한데 뭐 하시는 분들인가요

또 중요한 문제는 캐릭터다. 명조의 캐릭터 디자인과 모델링 퀄리티는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서사를 중요시한다면, 뛰어난 외형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진 않는다.

이야기 속에서 캐릭터마다 존재 가치를 알 수 없다. 비슷한 반응을 하고 비슷한 설명을 하며 비슷한 감정을 보인다. 당연히 갈등도 없고 전개 역동성도 없다. 이미 인물간 구조부터, 어떤 식으로 전개하려 해도 흥미를 끌어내기가 지극히 어렵다. 

게임 시나리오는 인물들의 대사로 전개된다. 대사가 얼마나 생명력을 가지느냐가 중요하다. 이에 대한 배려는 거의 없었다. '알토'와 '앙코'가 나타나 상황극을 주고받으며 자신들의 단체가 지닌 서사를 조금이나마 풀어낼 때가 개성이란 것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었다. 

재미있어진다고 하는 5막과 6막도, 이해 난이도가 쉬워졌을 뿐 전개와 연출에서 몰입감을 건드리진 못한다. 금주성을 지키기 위해 핵심 인물들이 한 컷에 모이는 장면 자체는 멋있지만, 연대감을 조성하는 사전 작업이 없었다. '로스트아크' 베른 남부에서 에스더 총집결 장면을 아무 사전지식 없이 보면 이런 느낌일까. 

■ 내러티브가 '무음 지대'면 어떡하나요

연출은 분명 아름답다. 5막 중간부터 6막에 이르는 시각적 영상미는 환상적인 수준이다. 그러나 앞서 말한 전체적 구성은 발목을 잡는다. 연출 역시 퀄리티는 좋지만 감정적인 의미로 연결되진 않는다. 

너무나 감흥이 없는 음악과 효과음, 더빙 디렉팅도 한 몫을 한다. 세계관에서 '소리'가 아주 중요한 콘셉트인데, 정작 게임은 소리가 가장 약하다. 마지막 전투가 절정에 달할 때도 뭔가가 비어 있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예를 들어, 호요버스의 '붕괴: 스타레일'이 초기 유저들을 사로잡은 장면은 야릴로 행성에서 벌어진 첫 보스전이다. 보스까지 다다르는 과정과 시각적 전개도 호평이지만, 만일 OST 'Wildfire' 활용이 없었다면 그 장면의 감동은 반 이하로 줄었을 것이다. 

1페이즈에서 가사 없는 배경음이 웅장하게 깔린 뒤, 그동안 전개해둔 행성의 서사를 주인공에 맞춰 응축시키며 2페이즈로 넘어간다. 그리고 정교하게 계산된 타이밍에 가사 있는 버전의 하이라이트 파트가 귀에 몰아친다. 그밖에도 청각 연출을 시각적 영상미와 함께 절묘하게 풀어내는 게임이다.

명장면은 기반 서사, 시각, 청각이 계산에 따라 움직일 때 나온다. 하지만 명조는 빈 톱니바퀴로 서사가 굴러갔고, 청각은 비어 있었다. 시각 하나로 좋은 스토리는 절대 나올 수 없다. 지금 명조의 내러티브를 완전히 원점에서 검토해야 하는 이유다.

기본적인 맞춤법 오류도 아직 너무 많다. 심지어 최종 보스전에서도 있었다
기본적인 맞춤법 오류도 아직 너무 많다. 심지어 최종 보스전에서도 있었다

■ 회생 불가능 수준은 아니니, 다시 쌓아올리길

건질 장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스카'의 양치기 일화 비유, 검은 해안을 둘러싼 궁금증 해결, 역행비를 통한 '기염'의 과거 묘사 정도가 떠오른다. 

기염 얽힌별 임무 스토리도 훌륭하다 말할 수준은 아니지만, 기본적인 만족감은 준다. 하지만 이것들이 전체 구조에서 일부에 불과하고, 6막 마무리는 또 지나치게 허망했기 때문에 뒷맛도 쓰다.

게임 시스템도 굳이 이렇게 해야 했나 싶다. 5막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연각레벨 21 제한을 넘겨야 하는데, 이는 꼬박 몇 시간을 플레이하면서 맵 탐험이나 서브 퀘스트를 수행해야 하는 분량이다. 이전 재미없는 이야기에 지친 유저들이 이를 모두 충실하게 따라올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분명 수집형 게임의 내러티브가 제약 사항은 있다. 되도록 다양한 인물이 모습을 비춰야 하고, 비호감 캐릭터도 최대한 줄여야 한다. 하지만 그런 조건에서도 훌륭한 내러티브를 갖춘 게임이 우후죽순 나오는 시장이다. 그만큼 눈높이도 올라갈 수밖에 없다. 

그래도 희망적인 점은, 앞으로 추가될 스토리에서 만회할 잠재력을 충분히 갖췄다는 것이다. '명조'의 세계관 자체는 게임 플레이에 잘 녹아들었고, 1장 전체를 '희생'하면서 기본 개념 주입은 했다. 이를 바탕으로 추후 이야기를 치밀하게 풀어낸다면 다시 믿고 기다려볼 가치는 충분하다. 

지금까지 베스트 캐릭터 디자인은 '금희'가 아닐까
지금까지 베스트 캐릭터 디자인은 '금희'가 아닐까

당분간 명조 플레이는 이어나갈 예정이다. 전투만큼은 라이브 서비스 게임 중 이 정도로 잘 만들고 재미있는 경우를 찾기 어렵다. 캐릭터별 액션 개성만큼은 확실해 누구를 사용하든 즐길 맛도 있다. 성급하게 출시했지만 강점은 이미 확실한 게임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쉬운 부분을 더욱 지적하게 된다. 퀄리티는 유저를 끌어들이기 가장 좋은 기준이지만, 나가지 않도록 붙잡고 팬덤을 형성하는 역할은 세계관과 내러티브가 맡아야 한다. 전 세계 많은 유저들의 조언을 거울삼아 더욱 흥미로운 이야기 속으로 우리를 빠져들게 해주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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