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작품 모두 신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 그려내
신에 대한 오만과 무지가 낳은 비극... 그리스 신화 속 '이카루스'와 닮아

※ 영화 ‘프로메테우스’와 게임 ‘피어 앤 헝거’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신이 저지른 실수에 불과한가? 아니면 신이야말로 인간이 저지른 실수에 불과한가?” - 프리드리히 니체

핀란드의 게임 개발자 미로 하베리넨이 만든 쯔꾸르 게임 ‘피어 앤 헝거(Fear & Hunger)’가 최근 화제를 모으고 있다. 가혹한 난이도에 걸맞은 특유의 음울한 세계관과 이야기는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명을 선사한다.

게임은 신과 인간의 관계를 나름의 방식으로 설명한다. 신은 인간을 빚어낸 창조주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능력을 아득히 뛰어넘은 초월자다. 이따금 자기만의 이유로 신의 권능을 얻고자 하는 누군가가 감히 그들의 권위에 도전하기도 한다.

비슷한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는 많을 것이다. 다만 그중에서 눈에 띈 영화가 있을 뿐이다. 바로 리들리 스콧 감독의 SF 영화 ‘프로메테우스(PROMETHEUS)’다.

한쪽이 인류 문화의 암흑기를 배경으로 한 고딕 호러이고 다른 한쪽은 미지의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 호러이니, 장르가 공포라는 것을 제외하면 두 작품의 공통점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각 작품의 인물, 프로메테우스의 ‘피터 웨이랜드’와 피어 앤 헝거의 ‘리가르드’에 초점을 맞춰보면 흐릿했던 두 작품의 메시지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피터 웨이랜드는 천재라는 수식어에 가장 부합하는 인물이다. 젊은 나이에 그는 과학 기술을 바탕으로 인류의 삶에 닥치는 위기들을 하나둘씩 해결해냈다.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일들을 행했으니, 감히 기적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의 시선은 위, 눈에 닿지 않는 곳 어딘가에 있는 신을 향한다. 신이 우리 인간을 창조했듯, 인조인간이라는 피조물을 빚어내 창조주로서의 신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 그도 “만물은 결국 죽는다”는 위대한 자연의 법칙까지 거스르지는 못했다. 긴 시간이 흘러, 그는 죽음을 앞둔다. 모든 기술을 동원해 죽음의 순간을 최대한 뒤로 미뤘지만, 이를 피할 수는 없었다. 다시 그는 신을, 죽음을 초월한 불멸의 존재를 꿈꾼다. 그래서 그는 노년의 몸을 이끌고 인류를 낳은 창조주가 있는 곳을 찾아 ‘USCSS 프로메테우스’호에 몸을 싣는다.

긴 여정 끝에 웨이랜드는 인류의 기원이 있다고 알려진 행성 ‘LV-223’에서 인류의 창조주인 ‘엔지니어(Engineers)’를 만난다. 그토록 찾던 자신의 신을 조우한 그는 자신 역시 창조주이니 신과 같이 영생을 누리게 해줄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사실 웨이랜드 앞에선 엔지니어는 그가 찾던 신이 아니었다. 그 역시 죽음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필멸자일 뿐이다. 신의 정체조차 알지 못하면서 신이 되고자 했던 웨이랜드의 무지와 오만은 그에게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더 나아가 인류 종말의 위기를 초래했다.

리가르드 역시 신이라는 존재에 더할 나위 없이 가까운 인물이다. 백전불굴의 명장이면서 동시에 혼란한 인류의 역사를 바로잡으려는 원대한 야망을 품은 혁명가였다. 항간에서는 그가 분열된 모든 대륙을 통일하고 인류를 구원할 것이라는 예언이 돌 정도였다.

하지만 한낱 인간의 몸으로 이들을 구원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통에 신음하는 인간들을 바라보며 그는 신을 꿈꿨다. 스스로를 희생해 인류의 앞에 닥친 그늘을 걷어내는 자애로운 신이었다.

그렇게 리가르드는 신으로 거듭나기 위해 ‘공포와 허기’라는 이름의 지하 감옥에 몸을 던졌고, 몇몇 이들이 그를 찾아 이 감옥에 발을 들이면서 모든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이름에 걸맞게 죽음에 대한 공포와 삶에 대한 욕망으로서의 허기만이 존재하는 참혹한 비극 말이다.

이야기의 끝에서, 그는 결국 인류를 구원할 신이 되지 못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새로운 신 ‘황색의 왕’으로 거듭나긴 했지만, 그가 바라는 인류의 구원을 이루지는 못했다. 결말 그대로 “그는 인간이 아니었다. 신의 자리를 찬탈해, 인간의 구원을 약속할 자의 모습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인류를 구원한 신으로 거듭난 것은 그의 딸이자, 신이 될 그릇을 품은 인물 ‘소녀’였다. 공포와 허기로 점철된 삶을 살았던 소녀는 끝내 그것을 관장하는 신이 되어 인류에게 번영과 발전의 길을 허락한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이야기다.

정리하자면, 웨이랜드는 영생을 꿈꿨으며 리가르드는 인류의 구원을 꿈꿨다. 하지만 신은 불멸이 아니었으며, 자애로움은 구원의 수단이 될 수 없었다. 결국 두 사람의 이야기는 오만과 무지로 신을 좇았던 인간이 맞이할 비극을 보여준다. 이는 감히 신들의 영역인 하늘을 침범했다가 맥없이 추락한 ‘이카루스’와도 닮아 있다.

두 사람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웨이랜드의 신에 대한 집착은 고스란히 그의 피조물 ‘데이빗’에게로 이어져 또 다른 비극을 낳는다. 황색의 왕으로 거듭난 리가르드는 후속작에서 ‘카이저’라는 이름으로 재등장해, 인류의 비극을 끊어낼 새로운 대안을 찾아낸다.

한편, 프로메테우스로부터 시작된 에이리언 시리즈는 오는 8월 ‘에이리언: 로물루스’라는 신작으로 다시 돌아온다. 웨이랜드의 오만으로부터 시작된 이 장대한 ‘묵시록’이 이번엔 어떤 이야기를 선보일지에 많은 팬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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