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적인 연출과 긴장과 이완 반복하는 구성이 탄탄해
두 시간 남짓한 짧은 플레이 타임은 단점... 할인할 때 구매 추천

무더워지는 날씨에 간담을 서늘케 할 괜찮은 공포 게임을 찾던 중 한 게임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 4월 출시된 국산 공포 게임 ‘11층(11F)’가 바로 그것이었다.

게임이 눈에 들어온 이유는 단순했다. 이들의 전작이 많은 이용자들의 머리에 핏대를 세우게 한 게임 ‘AltF4’였기 때문이다. 영화로 치면 ‘덤 앤 더머’에서 열연을 펼친 짐 캐리를 ‘이터널 선샤인’에서 다시 만난 기분이었달까. 호기심이 동해 큰 고민 없이 게임을 구매했다.

두 시간 남짓한 플레이 끝에 남은 것은 한 편의 괜찮은 공포 영화를 본 듯한 여운이었다. 다른 어떤 것보다도 영화적인 연출이 상당히 맘에 들었다. 그리고 떠오른 생각은 “좋은 연출이 있다면, AI의 작품도 예술이 된다”는 것이었다.

우선 연출부터 하나씩 살펴보자. 느닷없이 손톱을 깎는 흑백의 컷씬을 배경으로 한 메뉴 화면을 지나면 대뜸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문구로 게임은 시작된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컷씬에 일말의 배려도 없는 내러티브는 전형적인 졸작 인디 공포 게임의 그것과 썩 다르지 않다.

좁은 방을 수색해 열쇠를 찾아 굳게 닫힌 문을 열면서부터 반전은 시작된다. 문 너머로 나타나는 경계가 모호한 백색의 풍경과 그 안에 있는 사람들과 무덤의 검은 실루엣은 자못 새로운 느낌을 줬다.

간단한 이야기 설명과 함께 본격적인 게임이 시작된다. 양쪽의 계단 사이에 이어진 복도가 층층이 쌓인 건물의 11층에 도달하는 것이 게임의 목표이며, 이를 위해선 객실을 탐색해 문을 열 열쇠를 모아야 한다. 각 객실에선 그곳에 머물던—지금은 사라진—이들의 흔적을 찾을 수 있고, 이를 통해 이야기의 진실에 한 걸음 다가가는 방식이다.

앞서 영화적인 연출이라 표현한 지점이 바로 여기다. 객실 곳곳에는 불쾌감과 공포감을 적당히 유발하는 연출이 숨겨져 있다. 옆집의 신혼부부의 성생활을 관음하는 변태가 머물던 객실과 빽빽한 머리카락으로 검게 칠해진 두피로 둘러싸인 방이 대표적이다. 흑백으로 꾸며진 실사 영상 컷씬을 활용한 연출은 짧은 순간이지만 소름이 돋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면서도 게임은 완급 조절을 놓치지 않는다. 한쪽에서 그로테스크한 연출과 점프스케어로 긴장감을 줬다면, 다른 한쪽에선 가벼운 유머로 분위기를 환기한다. 전작 AltF4의 장애물과 함께 싸늘하게 식은 기사의 주검이 등장하는 방과 사진가 댄스데일의 방에서 흘러나오는 경쾌한 음악에선 개발자의 독특한 위트가 잘 드러났다.

이 지점에서 AI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상술한 경쾌한 음악은 음악 작곡 AI ‘Suno’를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외에도 게임 내 등장하는 몇몇 이미지 역시 생성형 AI를 활용해 제작됐다.

최근 너무 흔해진 AI 제작 리소스는 싫증을 넘어 불쾌감까지 느끼게 만든다. 특히 몇몇 저질 게임에서 활용될 때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 11층에서 활용된 리소스는 그리 부담스럽지 않았다. 가장 인공적인 작품이 좋은 연출을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처음엔 이 장면이 연출인 줄 알고 감탄했다. 이후 최적화 문제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처음엔 이 장면이 연출인 줄 알고 감탄했다. 이후 최적화 문제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쉬운 부분도 있다. 먼저 최적화가 부족하다. 어느 그래픽 옵션을 선택해도 렌더링 과정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며, 프레임 드랍도 제법 발생한다. 여기에 크고 작은 버그 문제까지 겹치면서 게임 플레이에 상당한 차질을 빚은 것도 사실이다.

기술적인 문제 외에도 게임 내 요소에서 몇 가지 문제를 찾을 수 있다. 먼저 비선형적인 진행 방식과 ‘백룸(Backroom)’처럼 반복적인 구조가 만나면서 좁은 건물 안에서 길을 잃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다. 무엇보다 두 시간 남짓한 짧은 플레이 타임이 가장 아쉽다. 멀티 엔딩도 없고, 다회차 요소도 없다. 차라리 플레이 타임을 늘려 이야기의 결말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필요했다.

연출은 정말 좋았지만, 정작 내러티브 차원에선 크게 와닿지 않았던 엔딩의 연출
연출은 정말 좋았지만, 정작 내러티브 차원에선 크게 와닿지 않았던 엔딩의 연출

결국, 약간의 기술적인 문제를 제외하면 게임 11층은 개발자의 영화적인 감각이 돋보이는 괜찮은 공포 게임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나치게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표현 없이 적절하게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는 구성이 매력적인 작품이다. 다만 가격에 비해 플레이 타임이 다소 짧은 편이니, 할인 기간에 게임을 구매하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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