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 정보 없이 소리만으로 미로를 헤쳐나가는 게임
아이디어 좋지만 게임 매력 보완 필요... 몰입감 더해지면 더욱 좋아질 것

으레 보여야 하는 화면 위엔 아무것도 없다. 검은 액정엔 애꿎은 내 모습만 비친다. 오류가 아니다.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 화면, 이것이 ‘플로리스 다크니스’의 정체성이다.

금일 열린 플레이엑스포 현장에서 재미있는 장면이 하나 포착됐다. 시연자 중 한 명은 안대를 쓰고, 다른 한 명은 고개를 푹 떨군 채 게임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것만 봐도 평범한 게임은 아닌 것 같았다. 호기심이 동해 해당 부스를 찾았다.

올드아이스맥스의 ‘플로리스 다크니스(Flawless Darkness)’라는 게임이었다. “완벽한 어둠”이라는 그 이름에 걸맞게 검게 칠해진 화면은 마치 거울처럼 마주 보고 있는 플레이어의 모습을 비췄다. 화면 한가운데엔 “헤드폰을 쓰고 소리에 집중해 주십시오“라는 문장뿐이었다.

게임이 시작돼도 주어지는 정보는 동일하다. 이제 당신의 두 귀에 의존해야 한다. 눈을 감거나 가리는 것을 권장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음악마저 없는 고요한 칠흑 속에서 당신은 탐지기의 소리와 효과음을 통해 복잡하게 얽힌 미로를 탐험하게 된다.

짧은 시연이었음에도 충분히 신선한 경험이었다. 눈을 가리고 탐지기 소리에 집중해보면 머릿속에 미로의 구조가 그려진다. 마치 고전 게임 ‘로그’처럼 한 타일 한 타일 차근차근 나아가다보면 어느덧 다음 방으로 넘어갈 수 있는 문을 만날 수 있다.

미로에는 잠긴 문을 열 수 있는 열쇠와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과 괴물, 그리고 이를 베어낼 수 있는 검도 등장한다. 물론 이들 역시 눈에 보이진 않는다. 오직 효과음만으로 이들의 존재와 그 위치를 찾아낼 수밖에 없다. 시각화 모드를 켜면 탐지를 통해 그 위치를 파악할 수 있지만, 이는 게임의 재미를 해친다.

다만 이러한 요소들과 실시간 상호 작용이 이뤄지지 않아 게임이 정적으로 느껴진 점은 다소 아쉬웠다. 발소리와 효과음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배경음이 빠지면서 이런 문제가 더 크게 느껴졌다. 다행히 출시 버전에선 시간제한처럼 게임의 긴박감을 높일 수 있는 요소들이 포함될 예정이다.

또 하나 아쉬웠던 것은 내러티브의 부재였다. 미로를 탐험하는 주인공과 그가 갇힌 미로의 정체, 주인공이 어둠 속에서 미로를 헤쳐가는 이유 같은 정보들이 없으니 몰입감이 떨어졌다. 시각 정보를 완전히 배제한 만큼, 게임의 내러티브와 함께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라거나 바람 소리 등의 환경음을 추가해 몰입감과 생동감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껴졌다.

박재형 올드아이스맥스 대표는 “시각장애인들도 함께 즐길 수 있는 게임을 만들고 싶었다“며 기획 의도를 밝혔다. 그의 뜻대로 플로리스 다크니스는 시각 정보의 부재를 통해 이들이 겪는 고충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게 만든다. 그래픽 구현에 대한 현실적인 한계를 아이디어로 극복하는 이들의 영리함이 훌륭하게 작용한 지점이다.

다만 이를 게임이라는 범주에 놓기 위해선 게임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고유의 경험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모든 체험을 게임이라 하지 않듯, 게임으로서 플레이하는 재미를 살린다면 이들의 아이디어는 게임 시장의 신선한 충격으로 빛을 발할 것이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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