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족한 전투 손맛, 광기 어린 음악 디자인, 장인 정신의 몬스터 구현
세계관 구조 멋지지만... 욕심을 낸 만큼 아쉬운 내러티브
'이브'를 둘러쌌던 논쟁, 꺼낼 필요도 없을 만큼 할 이야기 많아

뜻밖의 액션이 콘솔 게임계를 향해 강한 궤적을 그렸다.

'스텔라 블레이드'는 체험판부터 글로벌 게임계를 뜨겁게 달궜다. 홀연히 나타난 개발사 시프트업의 콘솔 AAA 대작, PS5가 독점한 비장의 카드, 이브의 외모와 선정성을 둘러싼 논쟁까지. 그리고 무엇보다 큰 이유는, 체험판 재미가 기대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4월 26일, 스텔라 블레이드가 출시된다. 장르는 스타일리시 액션. 정체 불명의 생명체들인 네이티브에 점령된 지구를 되찾기 위해 콜로니에서 내려온 전사 '이브'의 이야기를 그린다. 아포칼립스 세계관 속 처연하게 부서진 세계, 수수께끼에 쌓인 네이티브의 비밀을 풀어나가는 내용 전개도 흥미로운 볼거리다. 

끝까지 의구심도 많았다. '콘솔 뉴비' 시프트업이 첫 도전부터 전 세계 게이머를 매료시킬 게임을 만들 수 있을까. 메인만 20시간 이상, 꼼꼼히 하면 30시간 이상인 볼륨이 마지막까지 다채로울까. 

먼저 플레이를 마쳤다. 먼저 떠올린 결론이 있다. 게임을 시작하기 전 지켜본 성 상품화 논쟁은 그저 우스워질 뿐이었다. 이브의 외모를 두고 벌인 이야기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노출 빼고, 국적 빼고, 세계 최고 게임 기준에서 생각해도 스텔라 블레이드는 훌륭한 재미를 갖춘 수작이다.

■ 전투가 재미있고, 액션은 현란하다. 사실 이거면 됐다

액션 게임에서 훌륭한 액션은 필수 코스다. 경우에 따라서는 모든 것이기도 하다. 스텔라 블레이드는 그 합격선을 가볍게 넘은 채로 평가를 시작한다.

전투 기본 흐름은 '베요네타'와 '데빌 메이 크라이'의 결합을 떠오르게 한다. 여기에 '세키로' 한 스푼을 넣었는데 비중은 크지 않다. 저스트 가드는 균형을 무너뜨리는 큰 효과도 있지만, 후속 액션 스킬로 연결하는 시작점 역할이 더 크다. 자세히 설명할 수 없지만, 중반 이후 '갓 오브 워'를 생각나게 하는 전투 모드로 확장되는 맛도 좋다.

근접 연타, 강타 위주, 사격 중심, 베타 스킬 중심, 버스트 스킬 중심 등 갖가지 옵션이 있다. 모두 원하는 쪽으로 빌드를 짤 자유도가 존재한다. 한 가지 스타일 반복보다 다양한 형태를 섞어 쓰는 전투 설계도 매력적이다. 

숨겨진 캔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다만 찾기 정말 어렵다
숨겨진 캔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다만 찾기 정말 어렵다

원초적인 공격과 패링이 베타 게이지를 활용한 액션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또 버스트 액션까지 확대된다. 과거 베요네타 시리즈를 즐겨 한 입장에서는, 속도감을 약간 떨어뜨린 대신 묵직함과 디테일이 놀라울 만큼 늘어난 손맛이다. 

사격 빌드는 모든 옵션을 몰아줘야 딜링이 겨우 나오는 편이고 탄환 값도 계속 소모되긴 하는데, 사격전이 필요해지는 순간이 있어 가치는 있다. 지역에 따라 칼이 봉인되어 총으로만 해결될 때도 있는데, 이런 상황은 긴장감을 또다른 재미로 환기시킨다.

■ 콘텐츠 볼륨, 글로벌 스탠다드에 절대 부족하지 않아

오픈월드 게임으로 분류하기는 어렵다. 오픈월드로 열려 있는 지역은 황무지, 대사막 두 곳이다. 나머지 많은 지역은 선형적인 구조다. 다만 입체적인 레벨 디자인이 접목됐고, 서브 퀘스트 수행을 위해 다시 찾아와 돌아다닐 수도 있어 자유도는 보장된다.

전체적인 전투 진행, 퍼즐 등 기믹 통과는 어려운 편이 아니다. 전투는 보스전에 따라 까다로운 부분도 있지만 공략법을 바꾸며 적응하면 모두 상대할 만하다. 소울라이크의 몇 개 시스템만 슬쩍 가져왔을 뿐, 어디까지나 스타일리시 액션에 해당하는 이유다.

메인 시나리오의 분량은 길다고 하긴 어렵지만, 장르의 다른 게임들과 비교하면 평균은 하는 편이다. 메인 시나리오에서 불필요하게 플레이 타임을 잡아먹는다고 느낀 부분은, 돌이켜보면 한 군데가 있다. 그밖에 대부분 지역은 반드시 필요한 내용을 중심으로 밀도 높게 진행됐다. 

일부러 플레이스테이션 버튼을 형상화한 듯한 기믹
일부러 플레이스테이션 버튼을 형상화한 듯한 기믹

또 서브 콘텐츠가 생각 이상으로 많아 볼륨을 채워준다. 게임 진행도에 따라 자이온 곳곳에 산발적으로 나타나는 느낌표 양은 놀랍기도 했다. 서브 퀘스트가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충실히 담고 있고, 때에 따라서는 새로운 콘텐츠를 열어 환경을 변화시킨다.

여기에 의뢰 게시판에서 받고 수행하는 간단한 퀘스트들까지 포함하면 분량이 더욱 늘어나며, 이들 역시 최소한의 스토리텔링은 담고 있다. 밖에 나가 퀘스트를 완료하면 자동으로 의뢰자에게 이동 가능한 편의성도 갖췄다. 방대한 게임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볼륨이 부족하다는 말도 절대 할 수 없는 이유다.

게임 낚시를 좋아하지 않는데, '스텔라 블레이드' 낚시는 손맛이 각별하다
게임 낚시를 좋아하지 않는데, '스텔라 블레이드' 낚시는 손맛이 각별하다

■ '올해의 음악상' 후보 1순위

반드시 따로 단락을 두고 칭찬할 생각이었다. 음악과 청각 표현은 정성을 넘어 광기가 느껴지는 수준이다. 온전한 경험을 원한다면 반드시 좋은 사운드 장비를 권한다.

'니어 오토마타' 작곡가 오카베 케이치가 일부 곡에 참여해 화제였지만, 그런 분위기는 정말로 일부에 불과하다. 온갖 장르에서 강렬한 음악이 쏟아져나오면서 각 레벨에 어울리는 분위기를 극대화한다. 전투 등 상황에 따라 변주되는 음악 효과 역시 완벽에 가깝다.

무엇보다, 음악 갯수가 놀라게 한다. 오픈 월드 맵인 황무지와 대사막은 세부 지역마다 다른 음악이 배치됐다. 인간 최후의 도시 '자이온'은 아예 스토리 진행에 따라 음악이 변화하기도 한다. 심지어 특정 일회성 이벤트에 고유의 곡이 발견되곤 한다. 

전투 효과음도 섬세하며, 이것은 듀얼 센스의 최신 기술을 총동원한 조작감과 어우러진다. 작렬탄을 쏴서 근처 단체 폭발을 일으킬 때 두 손과 귀로 쏟아지는 감각은 전율이었다. 잠수 중 공명하는 환경음도 일품이다. 

이 정도로 음악에 섬세하게 신경을 쓰고, 양과 질에서 모두 뛰어난 게임은 몇 년에 하나쯤 볼 수 있었다. 흔한 액션 게임 스타일에서 벗어난 음악이 많아 더욱 가치가 있다.

■ 진짜 주인공들은 '이브'보다 몬스터일지도 모른다.

시프트업은 전작 '승리의 여신: 니케'에서도 영혼을 실어 빚어낸 랩쳐(괴물) 디자인과 모델링을 선보인 바 있다. 이번 스텔라 블레이드 역시 괴물 디자인에 진심이었다.

단순히 형태를 넘어선 이야기다. 비슷한 괴물을 구현한 게임은 많지만, 보통 모션이나 반응 동작이 이 정도로 부드럽고 다채롭지는 않다. 특히 중반부 어느 지역에서 '데드 스페이스'를 생각나게 하는 분위기와 괴물들의 행동 패턴은, 호러 액션을 좋아하는 유저라면 그저 행복할 수밖에 없는 연출이다. 

보스전은 일반적으로 준수하고, 스토리에서 제대로 힘을 준 보스는 충분한 짜릿함을 준다 특히 알파 네이티브와 보스전을 벌이기 시작하면 "그래, 이걸 원했어"라는 만족감이 몰려온다. 

일반 필드 몬스터나 앨리트 네이티브 종류가 조금 더 많았다면 양과 질 모두 완벽했을 것이다. 도감에서 모아놓고 보면 크게 부족한 것은 아닌데, 색다른 공략법이 필요한 적은 많지 않아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다만 이 점은 너무 하드코어한 공략을 꺼리는 유저라면 장점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 아주 멋진 세계관과 스토리라인, 그렇지 못한 '풀어내기'

중후반부터 발목을 잡는 부분이 있다. 내러티브 수준이 결정적으로 평가되는 장르는 아니지만, 잘 풀어냈다면 화룡점정일 가능성이 있었기에 아쉬움이 남는다.

스텔라 블레이드의 내러티브 방식은 '호라이즌 제로 던'을 생각나게 하는 부분이 있다. 기반 지식이 전혀 없는 주인공이 세상에 떨어진다. 다양한 인물과의 만남과 각지 탐험, 그리고 다양한 문서 수집을 통해 실마리를 풀어나간다. 그리고 이 과정은 상상하지 못한 세계의 핵심 비밀에 접근하는 전개로 이어진다. 

수많은 문서들을 읽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리 길지 않고, 술술 읽히며, 핵심 문장을 강조해주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점이 비교적 딱딱한 스토리 연출과 연계되면서 오히려 단점으로 다가온다. 

스포일러로 자세한 언급이 힘들지만, 시나리오 뼈대가 문제는 아니다. 세계관은 감성과 디테일을 함께 갖췄고, 전체적인 구도 설계는 훌륭하다. 그러나 중요한 스토리 진전이 너무 정적인 대사 설명으로 흘러가는 느낌이 다분하다. 게다가 게임 중 얻는 문서 힌트가 너무 친절해 앞으로의 전개가 이미 모두 예상이 될 정도다.

만일 플롯을 더욱 영리하게 배치하고 다양한 관점으로 메시지를 채워넣었다면, 스타일리시 액션에서 대대로 남을 만큼 멋진 서사가 완성됐을지도 모른다. 내러티브에 투자를 많이 한 만큼 여기서 느껴진 단점도 아프다. 이브를 포함한 중요 인물들의 캐릭터성이 결국 스테레오 타입에 머무른 것도 문제점 중 하나다.

게임 탐험 중에서도 이런 욕심이 부자연스럽게 다가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간혹 특정 탐험씬을 넣겠다고 먼저 정해둔 뒤 앞뒤를 이어붙인 느낌이 든다. 

트레일러에 등장한 칼날을 타고 레일을 질주하는 액션이 대표적이다. 그 자체로 속도감과 조작은 훌륭했다. 그밖에도 '언차티드' 등 어드벤처 게임을 떠올리게 하는 다양한 탐험 신을 경험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신에 돌입해야 하는 과정이나 끝마무리가 애매한 경우가 많았다. 인상에 제대로 녹아들지 못한 것이다.
 
전투 장점이 확실한 게임인데, 그 흐름이 끊기는 경우도 가끔씩 아쉽다. 황무지 솔라 타워처럼 '점프 킹'을 성공해야 오를 수 있는 코스는 명백히 좋지 않았다. 서브도 아니고 사실상 필수인데, 떨어져 죽고 다시 조심조심 오르는 과정을 반복하면 템포가 죽는 느낌을 준다. 

너무 많은 게임 요소를 넣으려 하지 말고, 전투를 활용하는 디자인에 더 집중했다면 더욱 즐거운 게임이 됐을지 모른다. 스텔라 블레이드의 스토리로서 전투 연출은 실망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임에서 상대적으로 가장 웃음을 준 친구
게임에서 상대적으로 가장 웃음을 준 친구

■ 그밖에 - 최적화, 조작감, UI

최적화는 흠 잡을 데가 없다. 균형 모드로 플레이했는데, 환경 변화가 갑자기 몰아칠 때 화면을 크게 돌리면 아주 한 순간 프레임 드랍이 느껴지는 정도다. 그밖은 완벽했고, 버그도 찾지 못했다. 

이것이 엄청난 업적은 아니다. 오픈월드형인 황무지, 대사막은 리소스에 부담을 줄 오브젝트가 많지 않아 보인다. 일종의 '요령'을 부린 셈이다. 하지만 타협할 점을 합리적으로 골라가면서 도시 '자이온'에서도 깔끔한 환경을 구현한 것은 분명 장점이다. 이런 노력은 오히려 해외에서 드물다.

조작감은 전투에서 준수하다. 반면 이동 관련으로는 조금 불편하다. 이브의 움직임에 관성이 조금 걸리는 편이고, 점프도 섬세한 방향과 타이밍이 어려울 때가 있다. 그래서 더욱 점프 통과 기믹을 덜어냈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UI는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운데 눈에 걸리는 부분이 몇 있다. 왼쪽 하단은 사실상 체력만 겨우 눈에 들어온다. 베타 게이지나 버스트 게이지는 신경 써서 봐야 체크되고, 이브의 실드 확인은 급박할 때 거의 보이지 않는 배치다. 보스의 실드 유무 색상도 지역에 따라서는 구별이 어렵기도 해 조금 더 선명한 표현이 필요해 보인다.

■ 총평 - 낯선 별에서 날아온 짜릿한 충격

먼저 정리하자. 환경과 액션 그래픽, 음악과 사운드, 몬스터 디자인은 글로벌 콘솔 게임계를 통틀어 최고급이다. 전투 시스템, 콘텐츠 볼륨 역시 수작 반열에 든다. 반면 내러티브와 캐릭터의 내면 개성은 아쉬움으로 남는 부분이다.

이렇게 긴 리뷰를 쓰면서 이브의 노출이나 비주얼에 대한 평가 따위는 쓸 틈도 없었다. 그만큼 순수하게 게임으로서 '재미'가 있었다. 오랜만에 스타일 넘치는 액션을 즐겼다. 비록 스토리텔링이 약했다지만 세계관 골자는 흥미로웠고, 가치관과 메시지가 충돌하는 구도 역시 울림이 있었다.

한국 콘솔 게임의 의미도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다. 이것이 어느 나라에서 나온 게임이라도, 신예 개발사가 신규 IP로 소니 세컨드 파티에서 이 정도 재미와 품질을 뽑아냈다면 호평을 받아 마땅한 게임이다. 특히 청각을 중시하는 유저라면 이 게임만큼의 축복은 없다.

김형태 디렉터는 스텔라 블레이드의 의미에 대해 "별에서 온 칼날"이라고 말했다. 이야기는 한 명의 천사가 이 행성에 안착하면서 시작된다. 글로벌 콘솔 게임계에 착륙한 이 게임은 기존 구도를 뒤집는 데 성공할까. 칼날을 완벽하게 벼린 것은 아니지만, 신선한 충격을 전달하기는 충분해 보인다. 이것이 끝이 아니라 시작을 알리는 검무이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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